수학을 꽃피운 아름다운 도서관

By | November 21, 2017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말이다. 도서관은 현대의 빌 게이츠를 있게 했을 뿐 아니라, 고대부터 위대한 수학자들의 요람이자 중세 유럽 학문의 암흑기에 수학의 씨를 뿌린 지혜의 집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수학과 문명을 꽃 피운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과, 도서관을 사랑한 수학자들을 만나 보자.

위대한 수학자들의 요람,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고대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항구 도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288년 알렉산더 대왕의 부관으로 있다가, 훗날 이집트를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세워졌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기원전 306년에 도서관을 세우고 “모든 민족의 책을 모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지시를 바탕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방대한 양의 책들이 수집됐다. 특히 해양 무역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특성상 수많은 국가의 무역선들이 이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세계 각 지역의 책을 수집하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책을 수집하기 위해 강제적인 수단까지 총동원됐다.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오는 배에 실린 책은 무조건 도서관에 제출돼야 했고, 도서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베껴썼다. 때로는 원본을 돌려주지 않고 필사본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책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될 수 있었다. 보관돼 있던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70만 권 정도였는데, 요즘 책으로 하면 약 1억 1000만 권 분량이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저명한 학자들을 도서관에 초청해 적극적으로 연구 활동을 후원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당시 세계 최대 도서관이자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다.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 에라토스테네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기원전 273년 ~ 기원전 192년 경).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에라토스테네스의 명성을 듣고 기원전 244년 경에 그를 알렉산드리아로 초청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도서관 연구원으로서 이곳에서 다방면의 책을 읽고 연구했으며, 학생도 가르쳤다. 그리고 기원전 240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당시 도서관장은 왕의 스승 등 최고의 지성이 맡는 높은 자리였다.

이후 에라토스테네스는 도서관에서 파피루스 기록을 보고 지구의 크기를 재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소수를 찾는 쉽고 간편한 방법인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를 생각해 낸다.

말 실수로 다시 태어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설립된 지 600년 만에 불에 타 없어지고 만다. 도서관의 아픈 역사에는 여러 가지 설이 남아 있는데, 로마의 황제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를 침략했을 때 실수로 불을 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카이사르는 전쟁 중 배에 불을 붙이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 불이 바람을 타고 도서관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난 것이다. 이후 3세기 경, 도서관은 로마군의 침략을 받아 약탈을 당하고 완전히 불타버리고 말았다.

지난 2002년,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던 자리에 현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다시 세워졌다. 그런데 도서관의 재건 계획은 엉뚱하게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말 실수로부터 시작됐다.

닉슨 대통령은 1974년에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이미 2000년 전에 파괴된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터무니없는 말 실수였지만, 이로 인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학교를 시작으로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 인근 아랍 국가와 선진국들까지 나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에 착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의 필요성과 역할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문을 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는 현재 100만 권의 책(2011년 기준)이 보관돼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그 규모는 점차 늘려 나갈 계획이다.

2002년에 재건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전체적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원통 형태로 설계됐다. ‘세계 문자의 벽’이라 이름 붙은 도서관 벽에는 상형문자, 설형문자, 한자, 아라비아 숫자, 한글 등 모두 120개 문자가 새겨져 있다.2002년에 재건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전체적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원통 형태로 설계됐다. ‘세계 문자의 벽’이라 이름 붙은 도서관 벽에는 상형문자, 설형문자, 한자, 아라비아 숫자, 한글 등 모두 120개 문자가 새겨져 있다.

수학을 꽃 피운 도서관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지식의 통로, 지혜의 집

로마가 멸망한 후 몇 세기 동안 중세 유럽은 학문의 암흑기였다. 당시 유럽에서 학문이라고 하면 주로 신학을 배우는 것이었고,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 지식은 빛을 잃고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 아랍인들은 인류가 축적한 위대한 사상과 과학 지식들을 흡수하고 보관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슬람 제국의 주권자인 칼리프들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왕립 도서관 ‘지혜의 집’이 있었다.

‘지혜의 집’은 9세기 7대 칼리프인 알마문에 의해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세워졌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이후 가장 크고 잘 정리된 도서관 중 하나로, 단순히 도서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식을 전파하는 학문의 중심지로서 자리잡았다.

지혜의 집은 건립 초기에는 페르시아어로 된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 그리스어의 문헌들을 보관하고 번역하는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그러자 자연스레 지혜의 집에서는 이슬람의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모여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주요한 철학, 과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잦았다. 그 결과 200년 간 300만 권이 넘는 필사본이 제작되며 도서관을 중심으로 지식이 전파된다. 이렇게 되자 세계의 학자들이 바그다드로 몰려들며, 지혜의 집은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잡는다.

지혜의 집이 배출한 학자로는 ‘현대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페르시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780년~850년 경)가 있다. 그는 일차·이차방정식을 풀기 위한 체계적인 해법을 내놓으며 대수학이라는 학문을 이끌어냈다. 대수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Algebra’는 그의 저서로부터 기원했고, 알고리즘이란 단어도 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그의 업적은 라틴어 번역을 통해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이는 유럽의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라이프니츠의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

“나의 천재성은 반복적인 독서의 결과물이다”

1691년부터 1716년까지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장을 지낸 라이프니츠의 말이다. 라이프니츠는 뉴턴과 함께 미적분을 발명한 수학자다. 그는 수학뿐만 아니라 신학, 철학, 법학 등에서도 재능을 발휘한 17세기의 천재로 불리는데,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에서 관장을 맡으며 정치,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적인 책들을 반복해서 읽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서 전문 도서관 중 하나로, 1572년 율리우스 공작에 의해 세워졌다. 초기에는 3만 5000권 장서로 출발했지만, 율리우스 공작의 동생이자 도서 수집가였던 아우구스트 공작에 의해 세계적인 고서적 도서관으로 거듭난다. 아우구스트 공작은 1666년까지 역사, 물리 등 여러 분야의 책 13만여 점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당시 8대 기적 중 하나로 불릴 정도였다.

이 도서관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 중 하나인 하인리히 사자공의 복음서가 소장돼 있다. 이 책은 독일의 작센과 바이에른 지역을 다스렸던 왕 하인리히 사자공이 1188년 브라운슈바이크 대성당에 헌정한 책으로, 빼어난 중세 독일어 필체가 자랑거리다. 1983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책은 3250만 마르크(당시 우리 돈으로 약 98억 원)라는 엄청난 가격에 낙찰됐다.

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의 내부아우구스트 공작 도서관의 내부

도서관을 사랑한 수학자

앞서 살펴본 수학이 꽃 피운 도서관 외에도 도서관 사랑이 남달랐던 특별한 수학자들이 있다. 영국의 수학자 존 디와 인도의 도서관학자 랑가나단, 두 주인공을 만나 보자.

도서관을 사랑한 신비주의 수학자, 존 디(1527~1608)

존 디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고, 동시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였다. 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파리대학에서 유클리드에 대한 강의를 하고, 1554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수학 부교수직을 제안 받을 정도로 유능한 수학자였지만, 이를 거절한다.

그는 저명한 학자로서, 영국 왕실의 조언자로 지냈다. 그의 제안 중 하나가 오래된 책과 기록들을 보존하기 위한 국립도서관 건립 계획이다. 존 디는 1556년 메리 여왕에게 국립도서관 건립 계획을 제안하지만 성사되지 않는다. 실망한 그는 자신의 집에 있던 개인 도서관을 확장하기로 결심하고, 평생에 걸쳐 유럽 전역에 있는 책들을 수집했다. 그 결과 당시 영국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만들게 된다.

한편 존 디에게는 또다른 관심사가 있었으니 바로 연금술과 마술, 점성술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점성술과 과학의 일에 있어서 존 디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다. 존 디는 점성술을 이용해 여왕의 대관식을 위한 길일을 제안하고 궁정에서 자신의 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실험을 선보이는 존 디.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실험을 선보이는 존 디.

도서관학자가 된 수학자, S. R.랑가나단

도서관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랑가나단은 원래 수학을 전공하고 수학 교수까지 지낸 수학자였다. 그는 인도 출생으로 세계의 도서관 발전에 공헌한 인물로 손꼽힌다. 본래 수학을 전공했던 랑가나단은 왜 도서관학으로 전향한 것일까?

1892년 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랑가나단은 17살에 대학에 입학해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지만, 생활이 넉넉치 않았다. 그래서 월급이 높은 마드라스대의 도서관장 자리에 지원해 채용된 뒤, 영국으로 도서관학을 배우러 유학길에 오른다.

런던대에서 도서관학을 배우던 랑가나단은 분류이론가이자 영국 도서관학자인 윌리엄 세이어스를 만나, 도서관학이 수학만큼이나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배운다. 세이어스는 랑가나단에게 도서관학 중에서 수학적인 성격이 강한 분류 분야를 연구하도록 권유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듀이의 10진 분류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는 인도에 어울리는 새로운 분류 체계를 원했다. 그래서 1933년 성격, 재료, 에너지, 공간, 시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는 ‘콜론 분류법’을 발표한다. 콜론 분류법은 어떤 물건이나 개념이라도 다섯 가지 영역으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은행 경영에 관한 책은 콜론 분류법에 따라 ‘X62 : 8.44N5’로 표현된다. X는 경제학(성격), 62는 은행(재료), 8은 경영(에너지), 44는 인도(공간), N5는 1950년(시간)을 의미한다.

현재 콜론 분류법은 주로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콜론 분류법이 위력을 발휘한 건 뜻밖에도 컴퓨터 발명 이후다. 컴퓨터가 콜론으로 분리된 카테고리를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한 덕분에, 이용자는 편하게 원하는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됐다.